주여, 용서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 하소서

어느날 외부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처참한 사고는 벌어졌다. 해질무렵의 아슬아슬한 시간대. 길을 건너 가야 하니까, 택시를 횡단보도 앞에 세웠다. 양재동에서 논현동까지 왔는데, 기사아저씨가 미터기를 안올리고 왔기에, 요금에 대해 협상작업을 벌이느라 나의 하차시간은 조금 늦춰 졋다. 문을 열고 내려서 다시 닫으려는 순간 도로쪽에서 위잉 하는 굉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파란색 물체가 횡단보도로 들이 닥쳤다. 쾅. 나는 그대로 얼어 붙었다. 미터기를 꺽고 왔으면 내가 있었을 자리에서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던 어떤 젊은 회사원이 기묘한 형태로 몸이 구겨진체 마지막 숨을 내뱉고 있었다. 진짜 마지막 숨은 앰불런스에 탑승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그도 나처럼 힘든 외부업체 미팅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러 회사로 들어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가 그곳에서 구겨진 채 죽어가야 하는 데에는 별 이유가 없었다. 구형 스포티지를 몰던 아저씨가 통화를 하다가 주의가 산만해 져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게 엑셀을 밟았고, 당황하여 더욱 있는 힘껏 밟아버린 것이다. 구형 스포티지는 신호 대기중이던 차량을 몇차례 들이받으며 튕겨져, 순식간에 횡단보도로 들이 닥쳤다. 남자는 처참하게 구겨지며 처박혔다.
 
스포티지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아, 씨발, 좆됬다. 전화기를 들었다. 통화상대는 보험사인것 같다. 짜증을 좀 내는 것 같다. 아, 빨리와요. 사람이 치었어요.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죽어가는 남자는 잠시 그 아저씨를 보는것 같았다. 저 새끼 때문에 내가 죽어가고 있는 건가. 병원이 아니라 보험사가 우선인건가. 어차피 죽을꺼라고 판단한 건가? 의혹, 분노, 증오, 상실감 등 온갖 변화가 스쳐가는 듯 했다. 아니, 사실 그저 죽어가는 눈빛의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둘러싸 수근수근 구경하는 인파속에서 결국 119에 전화를 한 것은 나였다. 그리고 왠지 그가 나대신 죽어가는 것 같아 미안했다.

실수는 용서 받을 수 있다. 내가 실수로 엑셀을 밟아 당신의 소중한 생명을 해쳤군요. 정말 가슴이 아프고 슬퍼요. 저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요. 평생 짐이 될 것 같아요.  제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죽어가는 남자는 그런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자신이 용서해 줘야 할 사람. 하지만 구형 스포티지의 운전자는 그저 좃됐다, 큰일났다, 짜증난다의 표정이었다. 용서를 갈구하는 죄지은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스스로를 걱정할 뿐이었다. 병원은 보험사에서 오면 의논하고 부를 작정이었는지도 몰랐다.  물론 구겨진 남자가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른다. '아씨, 저새끼 죽으면 좆되는데.'  

죽어가는 남자가, 이 모든것을 정말로 인식했다면, 운전자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했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는 원한을 품고, 운전자를 용서하지 않은 채 죽어갔을 것이다. 운전자는 왜 용서받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는 왜 자비를 갈구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그 차의 꽁무니에 적혀 있었다. [OO교회]. 그 스티커를 보는 순간 억측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그를 용서할 권리는, 그 자랑스러운 채권은 이미 구겨진 남자에게는 없었다. 운전자가 어느날 예수를 믿어버린 그 순간, 그의 죄는 사하여 진 것이다. 예수께서 그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죽어가는 남자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용서의 권리는 그분에게 있을 테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과 결과들에 대해서 우리의 의사가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미치길 갈망한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지 마음대로 흘러간다는 사실은 매번 목격하면서도 절대로 믿겨지지 않는 진실이다. 세상에 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있듯, 우리의 삶에도 인과가있기를 갈망한다. 그렇듯, 누가 우리에게 죄를 지었다면 우리에게는 그의 죄를 사하여 줄 권리가 생긴다고 믿고 있다. 죄지은자는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고, 그것은 인과론에 의해 우리만이 죄책감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용서라는 건 자비가 아니다. 사실, 용서라는건 권리다. 어떤 특권이다. 상대는 '죄지은 자'이고 나는 그 죄에 대한 채권자가 된다. 나는 그 죄에 대한 용서의 권리로 인해,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설 수 있게 된다. 발 밑으로 내려보다가 '그래, 용서할께'라고 말하는건 일종의 우회적 복수이며, 긴 쾌락이다. 퍼석퍼석하기 이를데 없는 인간의 삶에 내려진 자유의지의 달콤한 증거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 권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우긴다.
마치 가입만 하면 PSP도 주고, 노트북도 싸게 사게 해주고, 게임타이틀도 주고, 한경희 스팀청소기도 주고,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는 인터넷 전용선 서비스처럼, 믿기만 하면 모든 죄악이 한큐에 해결된다. 반대로 아무리 용서만으로 세상을 살아왔더라도 믿지 않으면 죄인인 것이다. 원죄? 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죄-용서'라는 인간이 창조한 개념으로만 이루어진 비교적 확실한 인과관계를, 그분께서는 잔인하게도 다시 부조리 상태로 내 던져버린 것이다. 죄와 용서의 시장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독점으로 얼룩져있다.

아아.
세상이 이토록 가혹하고 이토록 냉담하고 이토록 랜덤한 것은 그분의 성향의 반증인 것인지, 그분의 부재의 반증인것인지.  





밀양 / 이창동 감독 / 전도연, 송강호 주연

조디포스터 주연의 브레이브원의 예매날짜를 고민하다가, 이 영화가 생각났고, 곧 생각에 빠져들었다. 죄와 용서와 복수라는 테마. 건조한 묘사를 가장한 이 영화는, 누구든 자기 나름의 잣대로 해석하라는 듯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분명하게도 인간의 깊은 상처속에 무섭도록 잘 스며드는 이스라엘산 연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납따위가 들어있는... 싸고 손쉽고 위안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해로운 것이다. 그 따위 연고에 의존하는 것 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치유력을 믿는 것이 살 가능성은 높은 것이다.

ArborDay 님의 밀양 관련 글 "스스로를 마주하기-밀양" 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링크한번 걸어봅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by 오잉 | 2007/10/12 12:59 | 낙원 영화 | 트랙백(2) | 핑백(2) | 덧글(61)
트랙백 주소 : http://onesuck.egloos.com/tb/85764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은현의 블로그 at 2007/10/13 01:03

제목 : 용서.
주여, 용서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 하소서일단 이 문제는 다음 구절을 살펴보고 생각을 해봅시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장 5절에서 6절기독교의 죄 사함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피흘림(희생)에 의한 것입니다.왜 우리가(예수쟁이들이)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말하냐면그가 우리의 죄......more

Tracked from 한 잔 하실까요? at 2007/10/15 16:40

제목 : 만약 사람을 치었다면?
주여, 용서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 하소서트랙백 된 글과 댓글에서 생각해 봄직한 다양한 입장이 잘 드러난 것 같다. 내가 교회 봉고차를 몰고가다 사람을 치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사고 자체는 늘 부담스럽다. 하지만 일단은 교회차라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다. 교회차가 사고났다면 좋지 않게 볼 사람들이 많으니까,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교회차는 사고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하는 것 같아 상당히 부담스......more

Linked at 잡동사니. 낙서장. 포스트잍... at 2007/10/16 23:50

... 주여, 용서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나에게 양도 하소서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죽어가면서 남긴말이.'하느님은 나를 용서하실 거야. 그게 하느님의 직업이니까.'그냥 갑자기 이 글이 생각났어요.아직도 우리 ... more

Linked at a way of thinkin.. at 2008/07/19 22:07

... narod.ru/Math/Manin.htm Shimura Curves 강의록 http://www.ms.u-tokyo.ac.jp/~nicole/ 밀양 - 용서 http://onesuck.egloos.com/857647 리라하우스 2ch 개그 http://newkoman.mireene.com/ R=T at Japan http://www.kurims.kyoto-u.ac ... more

Commented by 난나 at 2007/10/12 13:58
아..읽으면서 가슴이 한껏 무거워졌습니다...
사고당하신 분이 제발 제발 제발 살아계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어디에 빌기도 좀 그렇네요.... 운전자.교회.....인간성..원죄..사함.
T..T.........그저 한숨만..
저도 사고난 거 한번 본적있는데 생각보다 구급차라는 거 늦게오더라구요..
그리고 모두 딱히 아무것도 할 수 있는건 없고 그저 길에 누워있는 환자만 바라볼 뿐..
웅성웅성..
그저 저는 오잉님을 같이 끌어안고 토닥토닥 (초면에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JoysTiq at 2007/10/12 14:01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그럴수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네요. 정말 믿기 힘들어요. 자기 때문에 다친 사람 앞에서 저런 행동을 할수 있다니, 어떻게...
우리나라 개신교란(개신교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자기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종교입니다. 제가 알기로 예수님의 말씀은 그게 아니었는데... 한국 개신교는 남과는 상관없는 신앙입니다. 오로지 나 잘되기 위해 나 잘될거라고 믿어버리는, 자신을 위한 종교...
가슴이 아프네요.
Commented by gaya at 2007/10/12 16:29
밀양은 책으로만 읽었지요. 책에서는 결국 여성이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인간에게 저지른 죄를 인간에게 용서빌지 않고, 그대신 신께 회개함으로 인간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면죄부를 얻는다. 기득권층과 결함하여 극보수화된 한국 기독교가 특히 그런 식의 회개를 주장해 왔지요. 결국 신은 인간의 책임 회피를 전례화시켜, 양심의 도피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그리도 악독하게 대하면서도 자신은 전혀 죄가 없다 여기는 E랜드 그룹 회장같은 이들이 생겨나는 거겠지요.

단지, 눈앞에서 목격한 저 가해자의 모습을 가해자의 종교와 결부시키기에는 좀 비약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실례되는 글을 남깁니다. 제가 보기에 가해자가 저리 냉담할수 있는 것은 기독교 문제라기 보단 인간성의 문제라고 보이기 때문이라서요. 말하자면 저 가해자의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 불교라 할지라도 사고에 대해 비슷한 행동을 취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이기심을 기독교가 더 증폭시킨 탓도 없진 않겠지만, 아무튼 저 사건에서 만큼은 인간의 태도를 종교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다소 비약이라고 보입니다.

의도치않게 어떤 사고를 내는 그 순간, 건전하게 살아온 이들이라 할지라도 눈앞에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건 피해자의 안위나 생명에 앞선, 자기 인생막장의 예감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좆됐다..' 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어있습니다.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자위 본능이기도 합니다. 물론 양식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과 몇분후에 이성이 다시 제정신을 차리게 되어서, 119를 부르고 구호행위에 돌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 가해자분은 상식 이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었기에 일차적으로 고심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자기자신뿐이었던 거죠. 대체로 사고를 낸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사실 그 피해자의 생명이 안타까워서라기 보단, 저 사람 죽으면 난 끝장이라는 위기감 때문인데, 저 사람은 위기감만이 커다랗게 증폭되어, 어떻게든 자기에 이득될만한 것부터 먼저 챙겨보려고 정작 해야할 행동을 뒤로 제쳐버린 셈이지요. 아마도 보는 눈이 없었다면 분명 뺑소니치고 달아나는 쪽을 먼저 택했을 사람일겁니다.

인간이 돌발적 상황에 대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들은 평소 믿는 종교의 가르침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평소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기 때문이지요. 거의 본능차원에서 끊임없이 이득과 손해사이에서 머리를 굴리게 되어버리는 와중에선 상식이 끼어들지를 못하는 거죠.

그러니 기독교도라서 인간에게 저지른 죄가 신께 회개함으로서 사해질거라 여겨서 저리 죄책감도 용서 구함도 없는거구나 말하는 것은 후속 상황을 모르는 이 시점에서는 섣부르다고 할수 있어요. 향후 저 사람이 피해자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표하지 않고 병원 한번 찾아가지도 않고서, 교회만 찾아 용서해줍사고 한다면 모를까.
Commented by 오잉 at 2007/10/12 16:30
[난나] 1년정도 된 일이라 이젠 놀람이 좀 잦아들긴 했지만, 토닥토닥은 아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도 종국에 그분이 어떻게 되셨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기사에도 나오지 않았고요. 살아계시길 빌지만, 그때의 상태로는 ....

[JoysTip] 몇번의 교통사고현장을 봤지만, 의외로 대부분 정도만 덜할 뿐 비슷한 반응들을 보이더군요. 퀵아저씨가 차에 치인 현장에서도 가해자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리저리 전화를 하고 있더라구요. 피해자에 대한 안스러움보다는, 당혹감에 가득찬 표정으로요. 믿기지 않는 이런것들이 현실이에요.

[에버마인드] 사실 저 사고를 기독교와 굳이 연결시킨건 저의 억측에 가깝지요. 그분이 교회다니시는 것과, 사고에 그렇게 대처하신것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입증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냥 그때 그렇게 생각했던 것들이 밀양이라는 영화를 봤을때 생각이 나더군요.

[Gaya] 네, 지적해주신 부분은 분명히 맞습니다. 사실, 그분이 종교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계기로, 원죄와 구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던 것이죠. 말씀하신대로 인간은 그리 신성하지 못해, 돌발적 상황에서는 스스로의 본질이 우선하지, 종교적 본질이 우선하지는 않는 다는 것, 정말 공감합니다. 제가 쓴 본문 전체보다 가치있는 덧글 감사드립니다.

[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10/12 21:35
제가 보고 들었던 비슷한 일이 생각나네요. 그때 그사람은 "하나님이 용서해주셔서 평안을 얻었어요"라고 이야기했죠. 자기가 깔아죽인 아이의 부모에게는 아무 용서도 빌지 않았던 그 사람이...
Commented at 2007/10/12 21: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10/12 22: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훗사과 at 2007/10/12 22:27
이 글을 읽고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기사가 생각이 나네요. 아마도 생활고가 이유였던 것 같은데. 자신의 두 딸을 살해한 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었어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범행을 저지른 아버지가 기독교 신자였고, 두 딸을 죽이고 자신은 자살할 작정이었다고 진술했었던 것 같아요. 형사가 그럼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았냐. 했더니 기독교에서 자살은 큰 죄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어요. 밀양만큼 기가 찬 얘기지요. 실화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구요. 종교는 면죄부가 될 수 없을텐데 말이죠.

제가 보아도 사고를 낸 차주는 특정종교의 신자라기 보다는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적어도 교회를 다니는 분이라면 좀 더 나은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렉트 at 2007/10/12 22:37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이야기네요.
밀양은 아직 보지 않았습니다만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Ha-1 at 2007/10/12 22:48
굳이 기독교가 욕먹을 사안인 것 같진 않지만

글 정말 잘쓰십니다 -_-b 진짜 한번에 읽히네요 ;;
Commented by 밤의여왕 at 2007/10/12 23:19
...눈물이 흐르네요...
......정말.......

할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혈류 at 2007/10/12 23:27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용서를 받는다는 건.... 아니죠..........
그 사람의 행동과 모든 상황을 봐도.. 그런 태도로 주님의 용서를 받아서 저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애시당초 주님께 용서를 받기 위한 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기독교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저분은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ru at 2007/10/13 00:08
논점에서 벗어난 답글일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경우,
저야말로 피해자에 대한 안스러움보다는
가해자가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더 당혹해 할 거 같아요.
감정 이입;;을 피해자에게 하면 한없이 분노할만한 상황이겠지만
가해자에게 해보면... 저는 나름 이해가 갑니다.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훌륭할 수는 없기에...
저라면 피해자를 동정하기보다
<내가 가해자>라는 데에 경악하느라 다른 것은 생각치 못할 것 같아요.
후에 정신이 들면 죄책감도 들고 눈물도 흘리고 용서도 빌고싶고 하겠지요.
=_= 일단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살인;인데, 그러리라 믿습니다.;;
Commented by 은현 at 2007/10/13 00:12
걱정 마세요 교회다닌다고 꼭 예수 믿는거 아니에요.
Commented by Chion at 2007/10/13 00:23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ㅅ')
뭔가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에피소드. 글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좀 지적하셨지만 종교보다는 그 사람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저런 태도의 사람이라면 기독교가 아닌 어떤 다른 종교를 믿었어도, 혹은 무교였어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리라 생각되네요.

적어도 기독교의 참 신자라면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못 본 척 지나간 제사장과 율법관이 되지 말고, 자기가 강도짓을 한 게 아니고 자기 할 일이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변을 당하고 버려져 있는 사람을 구제해 주었던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권장하는 것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아무래도 괴리가 있을수밖에 없고, 그 분이 열성적인 신자인지 어떤지는 모르지요.

종교의 교리를 각자 편한대로 해석하면 전쟁도 정당화되고 살인도 정당화됩니다. 이슬람교가 과연 믿지 않는 자에게는 죽음을! 이런 식으로 살인, 성전을 권장하는 것이 본래 이념이고 교리라서 테러범이 생겨나는걸까요?

글쓴 분 논리대로라면 기독교인들은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시는 그분을 등에 업고 마음껏 악행을 휘둘러도 좋다는 논리가 되지요. 그렇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라 단지 사이비, 마교일 뿐이죠. 실제로도 교리라든지 이런 것의 해석을 둘러싸고 수많은 분파들이 있고요.

기독교가 저런 사태를 만들어낸 것의 정답인 마냥 단정하시는 태도로 글을 전개해 나가신 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보실 수는 있겠지만 참 엉뚱한 결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하는 나름의 기대값이 있으면, 저건 그 기대값을 한참 벗어나버린 '예외적 예화' 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을 기독교 교리와 결부시켜서 마치 기독교인이면 신이 용서하기 때문에 인간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는가... 식으로 쓰신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 감이 있네요.
Commented by at 2007/10/13 00:25
왜 남의 생각까지도 마음내키는데로 생각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시죠?
그저 보이는대로 믿으려는 분이 무슨 신을 논합니까?
Commented by 룬트슈테트 at 2007/10/13 00:29
수많은 사람들이 살인자도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가게 됩니까? 용서받습니까? 라고 물으시더라구요. 이른바 원죄와 후에 저지르는 자범죄를 곧잘 구분하시지 못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만...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고 원죄에서 벗어나면 후에 저지르는 자범죄에 대해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진심으로 회개를 할수가 있으며 주 앞에서 용서받을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자신의 죄에 상응한 심판 또한 받겠지만... 죄가 없어지는게 아니고 용서받는다는 표현에 주의하십시오. 그 죄의 피해자에게서 용서를 받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Commented by 사혈 at 2007/10/13 00:31
저도 얼마전에 차에 치여 1m여를 회전해 날아갔었는데.. 아스팔트와 보도 사이에 널부러져있는 제 앞에 달려온 운전자..

학생 괜찮아? 아.. 의식은 있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쉴 새 없이 .. 상황이 여기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는 주문같은건지 그런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던데. 저로서는 약간은 당황스런 컬쳐쇼크였고. ..
본문은 그런 내용이 아니지만.. 그냥 교회 차라는 단어에 그 때 일이 떠오르네요..

그 사람. 그렇게 기도 하고나서 교보에 전화넣고.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시선을 피하면서. 반쯤 의식있던 저를 질질 끌듯 자기 봉고에 밀어넣고 병원으로 달렸었습니다. 당황해서 차선도 제대로 위반하고. 병원 찾는데만 40여분 시내를 뺑뺑이를 돌았으니. 위급환자였다면 전 차안에서 그냥 세상아 안녕- 했을거예요.

차에 치이던 그 슬로모션의 순간보다.
아스팔트가 눈앞으로 다가오던 순간보다도요

그 때 진심으로 무서웠습니다. 운전자가 제정신이 아닌게
딱봐도 보였어서요. 그대로 절 태우고 어디 한강에라도 돌진하는거 아닌지
차에 치였을때도 생각해본적없었는데. 그 봉고 타고 가면서
잘하면 나는 오늘 여기서 끝이구나 그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음... 전 피해자였지만. 그 때 가해자의 그 두려움과 당혹함을
그대로 전해 느낄 수 있었어요.
누구든 그렇게 사면초가의 상황에선.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해도.

'운전하다가 잠깐 부주의 하는건 누구라도 한번은 해보는 경험이잖아.
왜 하필 저 사람이 저기 서있었던 거야? 왜 하필 내가 지금 여길
지나가고 있었던거야?' 식의 원망이 먼저일 것 같았어요.

남을 향한 배려라는게
자신의 위치가 안전한 상황일 때 나올 수 있는.
여유지..

누구라도 똑같을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피해자였으니까. 그리고 당장 움직이고 생각하는데는
고통은 있더라도, 뭐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었어!! 식의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거기서 더 상황이 나빠질 것은 없었으니까.

가해자의 두려움이라던가를 어느정도 공감하고 측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거였지만.

본문 가해자의 그 당시 마음을 어느정도 알 것 같네요.

+감히 제가 할 수 있는 말인가는 싶지만 덧 붙이자면.

그보다는, 오잉님이 이렇게 살아계시고.
어느정도 글로 상황을 남기고 생각을 남기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상황을 가질 수 있게 되셨다는데에
저는. 제가 믿지는 않지만- 그들이 믿는 신님께
감사하고싶은 마음입니다.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길 바랄게요.

+제가 차에 치였을땐 주변의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119 부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오잉님은 119 불러주셨네요.
Commented by 덧글 at 2007/10/13 02:20
억측으로만 글을 쓰셨네요. 사고가 난 뒤 잠깐 현장에서 계셨으면서 사고 이유를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셨습니까?

"통화 상대는 보험사인 것 같다" 사고 낸 뒤 보험사에 전화했다는 것도 추정 아닙니까? 그 뒤부터는 보험사에 전화한 것으로 기정사실하고 죽일 놈 만드시네요. 말씀 들어보니 119에 전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19에 긴급 전화해도 이름 물어보고 자세한 위치 물어보고 하면서 급할 땐 짜증나게 전화 받습니다.

도시 길거리에서 교통사고 벌어지면 1분도 안돼서 수십통의 신고 전화가 옵니다. 119에 전화한 것은 오잉님뿐이 아니었을 거에요. 사고 운전사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당시 신고 기록에 남아 있을 겁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피해자 앞에서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인데, 그럼 죽어가는 운전자 앞에 놓고 무릎 꿇고 기도라도 해야 할 상황인가요? 서둘러 연락 취하고 피해자 후송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씨발, 좆됬다." "아씨, 저새끼 죽으면 좆되는데." 이건 모두 사고 운전사가 한 말이 아니라 오잉님이 쓴 대사 아닙니까. 표정이나 정황에서 그런 걸 읽으셨을 수 있지만, 직접 저렇게 말한 것은 아니며, 표정과 정황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사고 운전사를 이렇게 나쁜 놈으로 생각하신 것은 "00교회"라는 스티커를 보신 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회가 사람 또라이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확인되지 않은 억측과 주관적 해석으로 어떤 일을 침소봉대하는 것은 바람직해보이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아람 at 2007/10/13 02:44
음;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읽다가 위의 덧글 님의 덧글을 읽다가 남깁니다.
저는 오잉님이 그 사태를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운전자를 매도하려는 의도가 아닌, 이기주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두 한번쯤 돌아보고 생각하고 반성할 여지를 제시한 의도가 아닌가 합니다.
기독교 비판적인 느낌은 있지만요:);;

음,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에 따라 다른것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저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저는 저런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때 이 글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타누키 at 2007/10/13 04:42
이오공감타고 왔습니다. 글 잘쓰시네요. 잘봤습니다. ㄷㄷ
정말 충격이 심하셨을듯..
그리고 저도 느낀 점에 대해 쓰자면 교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리고 개인의 일일뿐이다 하면 교회는 결국 개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못미치
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죄는 사해주니 편리하군요. 중간에 원리적인
이야기로 죄는 사해지는 것이아니라 용서받는 등등으로 이야기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믿는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네요. 일부의 문제처럼
말씀하시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죄사함아닙니까? 한국이나 미국에서도(물론
한국인교구입니다.) 죄사함으로 들었지 따로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독실한 신자가 아니었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글을
기독교인이라 문제다가 아니라 기독교인임에도 행동에 별 차이가 없구나로
받아들였습니다만...그리고 피해자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걱정하는 눈치라도 보였으면 오잉님이 글을 쓰셨을지....
그것또한 개인의 일이다 하면 역시 교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군요.
저 또한 운전자로서 사고를 몇번냈었고 당해보았는데 많이 당황스럽긴
하더군요. 인명사고는 한번도 없었지만...휴 저상황이었다면 정말 ㅠㅠ;
아찔하군요.
Commented by sugar at 2007/10/13 05:45
저도 가야님과 덧글님의 덧글에 공감을..^^;;; 기독교의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의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고.. 덧글님의 글을 읽어보고 본문의 글을 읽어보니 확실히 그런 감이 없잖아 있네요.. (오잉님의 덧글과 달리 운전자는 왜 용서받으려 하지 않았을까..란 부분에서 종교때문에 행동했다는 뉘앙스를 깊게 받았구요.)
Commented by うるさい at 2007/10/13 06:08
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좀 강조하려고 -_-; 하신거라고 보면 될거라고 생각하네요...
아무튼 생명이 앞에서 꺼져가는데 119랑 112부터 안부르다니...
그대로 죽으면 형사처벌 당할걸 생각한다면...
보통 사람이라면 119부터 부르겠죠...
그냥 '평범한' 교통사고라면 보험사 부터 해도 크게 문제는 안되지만...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그렇다는건 도덕적으로 엄청난 결함이 있다고 밖에 안보이네요...
Commented by giyun at 2007/10/13 08:00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땅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슬프네요. 정말 그 회사원님 살아계셨으면... ㅠㅠ
Commented by 레이코 at 2007/10/13 08:09
예수믿는다고 꼭 저러는것도 아닌데요 뭐
Commented by 드레이크 at 2007/10/13 11:10
예수믿는다면 꼭 저러면 안되죠;ㅋ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3:15
[OO교회]. 그 스티커를 보는 순간 [[[억측]]]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왜 그게 교회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라고 하는 분들은 글 좀 다시 읽어주세요. 억측이라고(즉, 억지로 해본 추측) 적혀 있습니다.

지금 적으신 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과율 따위는 다 무시하는 저 어처구니없는 종교는 과연 올바른가' 하는 것을, 다른 장면 A에서 '억측'할 수 있는 형태로 묻는 겁니다. 저 놈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쓰레기야 뭐 이런 얘기가 아니고, 어떤 쓰레기가, 교회를 다니더라. 그런데 교회에선 이러이러한 교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 교리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교리는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인겁니다. 명백히 논설문 형식에선 잘못되었습니다만, 수필 계열에선 절대 틀린거 아닙니다.

교과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 말을 탈 때는 내리막에서도 속도를 내서 잘 타는데, 남의 말을 빌려 타면 혹시나 넘어질까 두려워서 속도를 못 낸다. 사람 사는게 다 이런 것일까?

라는 글 있습니다. 그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1. 당신 죄 지었어.
2. 그러니까 안 믿으면 당신은 지옥행이야
3. 자 이제, 지옥 갈래, 아니면 믿어서 천국 올래?
덧) 지옥 가면 괴로울껄 낄낄낄
덧2) 난 충분히 기회를 줬어. 죄를 사할 수 있는 방법도 지금 옆에서 알려주고 있잖아. 귀는 좀 시끄럽지만.

이러한, [오히려 '악마적인' 마케팅](!)에는 매우 경멸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오잉님의 의견에 매우 동의합니다.

생각해봤는데 120만원 전화비가 연체되었습니다 9번을 눌러주세요 랑 비슷하군요.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3:19
최소한..

누군가에게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에게도 죄를 지은거다.
따라서 그 누군가에게 사죄하고, 하나님한테도 예수님을 통해 사죄해라

이런식으로 바뀌어야 할텐데 말이죠. (랄까, 그게 맞다는 얘기도 있군요. 그게 맞다면 왜 세상이 이모양이죠--;?)
Commented by at 2007/10/13 13:25

단지 예를 들기 위해 저 일화를 적었다면 충분히 악독한 예를 지어냈군요.
어떻게 기독까든 기독빠든 기독교만 들어가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건너갈까.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3:42

예를 들기 위해 적었다기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저게 어째서 '지어낸' 얘기가 되나요. 경험한 일이.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3:43
더불어 저는 기독까가 아닙니다.
아니, 정정하죠. 겉으로 보기엔 같군요.
Commented by wizva at 2007/10/13 14:02
;ㅁ; 아닙니다. 아니예요.
기독교인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용서를 구할 의무와 끝까지 용서를 해 줄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 없이 하나님-인간의 관계만을 강조하는 것은 거짓 기독교인입니다.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4:09
wizva //

죄송합니다 사과드릴께요.
그게 맞다면 사실 종교 자체에 대해 화낼 일은 아니군요. (..전파하는 방식이 아직 문제가 있지만)
종교를 저런 식으로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해당 종교의 윗분들, 교육자들, 교리해석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일듯 싶습니다 (..그 밖에, 저런 식으로 멋대로 해석하는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로--;; )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4:11
..더불어 거짓 기독교인에 대한 방출 처벌은 언제쯤 단체로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하군요. 거짓 기독교인도 기독교인 타이틀을 갖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양 쪽 모두 싸잡아서 욕을 먹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 좀 슬프군요.
Commented by 가루 at 2007/10/13 14:14
너무 제 생각만 해서 게시판을 어지럽혀서 죄송합니다(-- ;)
생각해보니 굉장히 민폐군요.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제리 at 2007/10/13 17:12
가루/ 거짓 기독교인(그리고 거짓 지도자)은 성경에도 주의해야 할 블랙 리스트로 나와 있습니다만, 그들을 방출할 시스템은 종교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의 교화와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에서 방출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이 방출 시스템이 있다 해도 중세 시대 교황의 파문과 같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으로 거짓된 자들에 대한 형은 사후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서 이루어지며 이는 현세의 상대적으로 짧은 삶의 기간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이 이상의 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는 개인에 대해 교회의 지도자가 경고를 주거나 고치든가, 이 교회에서 나가시오 같은 최후의 선택권을 주는 경우는 있습니다. 물론 더 막가는 경우 법적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요.
글쓴이/ 억측으로 전제하시고 글을 쓰셔씁니다만 글을 읽는 이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개연성 없는 비난글로 보일 소지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 글을 써주시면 합니다. 귀하의 글 실력으로 볼 때 충분히 자극을 하지 않고도 마음을 울릴 글을 쓰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개신교에서는 인간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은 채 신에게만 용서를 구하면 된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관련 구절을 예로 든다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내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신지라." 등이 있는데요. 이는 신에게만 용서를 구하지 말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도 가서 죄를 고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Commented by 레이코 at 2007/10/13 18:57
방출할 시스템이 정리되어 있지않아서 요즘들어 교회안에도 그런 거짓 기독교인이 많다고 합니다. 아니어도 거짓 기독교인은 사방에 널렸지만.
예를 들자면 생명책에 지워버리겠어 라든가 빤쓰발언의 그분
Commented by 야훼 at 2007/10/13 20:04
내가 왜 그 권리를 너에게 줘야 하지?
너희 인간들은 아직도 크게 착각하고 있어.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과, 너희들이 너희들 스스로 만들어낸 도덕윤리규범이 일치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단다. 제발 그걸 착각하지 마.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믿고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으며 너희는 나의 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야.
Commented by Joo8111 at 2007/10/13 21:34
사람의 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야합니다.

제 생각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뭐...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진심을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추측할 뿐입니다.

이 글을 쓰신 분도 그저 추측하셨고, 그저 자신의 글을 쓰신 것입니다.
죄에 대한 판단은 죽고나서 하라면 이상히 보이겠지만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이야기를 말하면...
성경에는 음행한 여자와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를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성적인 죄를 범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판단은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가장 옳습니다. 다른 이를 판단하는 것은 '내가 옳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상황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각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도 먼저 내가 옳은가를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저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저의 오만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저 생각이 비난으로 옮아질까 걱정되어 적었습니다.
Commented by 오뎅사리 at 2007/10/13 22:02
교회다니는 사람은 사람이지 예수가 아닙니다. 사람이니까 저런거지요.
교회다니는 사람이 죄다 착하고 그런것은 아닙니다.
Commented by 오잉 at 2007/10/13 22:53
주말에는 왠만해서는 잘 안들어오는데, 잠깐 들러보니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글에 충분히 포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하기 위해 다시한번 설명드리자면 이글을 쓴 의도는 이렇습니다. 브레이브원을 보려하다가 밀양이 생각났고, 그래서 죄와 용서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목격했던 사고현장이 생각났고, 일종의 비유로써 그 사례를 활용한 것입니다. 글에 나와있는 '억측'이라는 단어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그저 억측일 뿐입니다. 이 사건을 빌어 용서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부분이 불쾌하셨다면 용서해 주시고, 그저 글을 쓰는 잔재주중 하나로 이해하셨다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은 기독교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와 비난의 글은 아닙니다. 그저, 이창동감독님과의 교감을 이야기 해 보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물론 저의 근본적인 입장은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요.

조금 더 부연하자면 저 사고, 저에게는 매우 불쾌한 기억입니다. 교회 스티커와 전혀 관계없이, 저 운전자에 대한 분노가 몇달은 갔습니다. 현장에서 저랑 같이 그의 표정과 행동을 보았었다면, 여러분도 며칠을 잠을 설쳤을 겁니다. 그 표정은 지금도 또렷해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분노하셨건, 공감하셨건, 아까운 시간 쪼개 읽어주신분들, 또 덧글까지 달아주신 분들 모두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Commented by 오잉 at 2007/10/13 23:08
아, 그리고 그 아저씨가 전화하신곳은 분명히 보험사였습니다. 앰불런스보다 렉커차가 먼저 왔고, 그다음 보험사가 왔습니다. 운전자는 열라 반가워하더군요. 그다음 경찰차, 그리고 앰불런스가 도착했습니다. 119측이랑은 저랑 몇차례 통화를 했고요. 정확한 위치랑, 환자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요. 자세를 이야기하자 절대 건들지 말라고 하더군요. 신고자는 분명히 저 하나였습니다.

사고에 관련된 정황중 어떤 것들은 경찰이 도착하고, 정리되는걸 봐 가면서 나중에서야 알게된 것을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 먼저 적은 것들도 있습니다. 저는 사고현장이 완전히 정리될때 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어쨋든 신고자니까요.


그리고 '아 씨발 좆됐다' 이부분은 그 아저씨의 표정에 대한 묘사일 뿐입니다. 오해하시는 분이 있으실줄은 몰랐습니다. 용서하소서.
Commented by 민지님 at 2007/10/13 23:52
오랜만에 왔더니 이런포스트가있을줄이야!
근데 적을말은 딱히없네요 제가 아프간 피랍인사건을 보면서 느낀 분노가 고스란히 일어낫다가(바이블 19세이상만들기 개신교친구들을 한번더 생각하고만나기.등등의 망상과 함께 ) 댓글보면서 저와 같지않은 생각을하지않는사람들이 많음에 놀랄뿐.
오잉님의 논리와 개념 가득한 글,밑에 정중하게 설명하신 글, 본받고 갑니다.^^
Commented by 새로운세상 at 2007/10/14 00:0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지푸라기 at 2007/10/14 00:35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본문도 좋았지만 생각은 오히려 댓글들이 더 많이 하게 하는군요. 가끔 '종교'라는 부분에 과민반응도 엿보이고...
[밀양] 참 좋게 봤습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컷, 그 빛의 의미와 타이틀을 이미지로 연결하면서 이창동의 깊은 성찰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이건 우리 기독교에 대한 얘기죠. 만약 깐느가 한국 기독교를 상세히 알았더라면 그랑프리를 받고도 남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반 기독교적 영화라고 떠들어 댔던 거 같은데 오히려 전 이영화야말로 좋은 선교 영화였다고 봅니다. 꾸벅,
Commented by 난초 at 2007/10/14 08:18
오잉님의 문제인식, 안타까움을 이해합니다.
특히 좆됐다고 생각하는 운전자의 표정.. 사회의 인간성 말살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옛날엔 안그랬잖아요??
사고당시 상황이야 오잉님이 묘사하고 느낀대로 판단하는게 정확하겠죠
댓글단 님들중에 일부 개념없는 분들도 보이네요. 오잉님의 상황묘사를
부정하면서, 거기에 대한 억측 재탕이라니 ;;; 모순이죠.

타인이 피해를 입으면, 불쌍함을 느끼고 동정심을 느끼는게 인지상정이고
특히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을 보고 '좃됐다' 이정도 밖에 못느끼는 인간이라면
정말 어떤 인간인지 짐작케 하네요

어떤 분들은 이 사건이 당사자의 인간성 문제라고 하시는데
물론 그것도 맞지만. 글쓰신 오잉님 처럼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유일신 중심의 이기주의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교에 경우, 배가 고프면 먹을것을 줍니다.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줍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불교에는 신이 없죠. 주체종교기 때문에)

그런데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는, 절대적인 어떤 개념이 중시되서
생명이라는 정말 중요한 가치가 평가절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사람이 그대로 세상을 떴다면
분명히 원한과 고통, 괴로움을 가지고 죽었을텐데
인과관계에 있어서 가해자는 다음 세상에서 똑같은일 또 당하는 겁니다.
(돌고 도는거죠)



Commented by 뽀삐 at 2007/10/14 16:02
정말 충격이 심하셨겠네요. 휴.. 만약 제가 오잉님과 같은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전 교회 다니는 입장이라 그 분의 [ㅇㅇ교회] 스티커를 본 후에 더더욱 엄청나게 열받았을거 같아요. "나 교회 다닙니다!" 라고 소리치며 다닐거라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네요. 역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룬트슈테트 at 2007/10/15 01:16
포스트를 쓰신 본인께서 억측이라고 하시는데 억측이 아니다 라고 하시는 한심한 분이 계시는군요.
Commented by 建武 at 2007/10/15 07:03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런 식의 비난 혹은 한쪽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 하게 보이지 않는군요.
Commented by conpanna at 2007/10/15 13:12

천국이 있다면 내가 사는 이 곳보다 신나는 일이 일어날까.
지옥이 있다면 내가 사는 이 곳보다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지금, 똑바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음, 여전히 마음이 무겁네요.
Commented by 루미스 at 2007/10/15 16:06
사람의 마음보다 악한 게 있겠습니까...
Commented by 빵돌이 at 2007/10/15 18:31
개인의 잘못을 가지고 그 개인이 믿고 있는 신앙에 전가할 필요는 없지만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 신앙에게 책임이 없다고 보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차량에 ㅇㅇ교회 마크만 없었어도 이런 글을 쓰시진 않으셨겠지요.

그냥 개인에 대한 분노만으로 그쳤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 정확히 말하면 ㅇㅇ교회를 포함한 개신교는

그 운전자를 올곧은 신앙인으로 만들지 못한 책임 큽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은 운전자 자신에게 있지만 그 후에 일어난 후속 조치와

그 행태에 대한 책임은 분명 그 신앙에게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더구나 신앙이 없는 사람이 사고를 냈다고 해도

상식적인 윤리를 지닌 사람이라면 다친 사람을 먼저 보살펴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하물며 사랑을 전하라는 교리가 기본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 따위 행동을 했다는 것은 그 책임 소지가 개인의 문제 범주를 벗어 났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차량에 교회마크가 있었다는 것은 교회에 어느정도 지위가 있는 신분임을 나타내는 것인데(설마 교회차를 개인이 개인적인 이유로 빌려나왔을 리는 없다고 보기에)

그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는 신앙심과 사회적 윤리를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 정상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그런 지위에 올려놓은 교회의 인사에 문제가 있거나

어쩔 수 없이 그 지위에 그런 사람을 올려놓았다 하더라도

신앙과 윤리에 대한 교육과 인성 교육을 하지 못한 교회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비단 이런 예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런 수많은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들 때문에

개신교가 욕을 먹는 것이겠죠.
Commented by 빵돌이 at 2007/10/15 18:49
그리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제가 개신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나

대략 주위에서 봐온 것을 토대로 이야기 하자면

개신교는 죄-용서의 상관 관계에서 인간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언가 잘 못을 저지르는 기도하고 용서받았다고 그러던데(혹은 용서를 빌었다고하던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기도이며 누구에게 한 기도인지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 입니다.

분명 그 죄라는 것이 사회적인 시각에서 법의 위반을 의미할 정도가 아니었다면

도덕률 안에서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개인과 개인(공동체를 포함한 개인) 간의 문제 혹은

개인 스스로의 양심의 문제임을 의미하죠.(거기에 신의 존재가 가미됩니다.)

그런데 양심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 스스로의 문제임으로 뭐 그렇다 치더라도

개인과 개인(공동체)의 문제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기도를 하는 행위자체가 용서의 지침이나 용서 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스스로의 반성에 불과하겠지요.(기도하는 즉시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면야 또 다를 테지만..)

또한 인과율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있어야하고 해야하는 것이 빠진 채

기도라는 신앙적 행위로 잘못을 지우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은 그 순간 죗값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행위는 그에 대한 책임이 존재하며 그 행위가 '죄'라는 범주에 들 경우

행위에 대한 책임은 '죗값'이라는 이름만 바꾼 형태로 남아있다는 겁니다.

기도하면 죗값이 사라집니까?

아니면 그 죗값에 상응하는 다른 책임을 지거나 이행합니까?

그 죄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책임(죗값)을

이행합니까?

제가 느끼기에 죄와 용서라는 과정에 인간이 배제되었다는 느낌의 근거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따라서 죄와 용서에 대한 이론적 바탕에 개신교는 근본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믿기만 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결함을 지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불량먹보 at 2007/10/16 09:53
종교는 인간의 선악을 구분하는데 아무 영향이 없다... 누구였는지 잊었습니다
Commented by 쿠라사다 at 2007/10/16 13:06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만 그래도 굳이 이런 흐름을 타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막말로 개신교인이 뭔가 선행을 하거나 업적을

쌓고서 그 공을 개신교와 종교에 돌리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도

궁금하네요. (일반적으로 개신교에 비판적이신 분이라면야 뭐....)
Commented by 수상한사람 at 2007/10/16 17:29
너무 비약이 심하신거 같네요,
그사람이 기독교를 대표로 하는 사람도 아닌데,

어느 유명한 목사가 그런짓을 했다면 모르지만요,
단순히 믿음이 부족한 신자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냥, 못배운 놈이라고 생각을 하세요,,
Commented by 홀리 at 2007/10/17 17:13
니 인생 쵝오의 행운 중 하나는
그분께서 기독교인이 아니시라는 것, 아닐까? *
Commented by 해경 at 2007/10/17 18:42
정말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다크템플러 at 2007/10/18 13:40
숙연해지는 글이군요. 추천.
Commented by 껍데기 at 2007/10/18 21:48
공감보고 글을 남깁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신의 유무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는 생략합니다만,.
인간은 거기에도 권세를 만들어서 찬양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죠.
Commented by 음.. at 2008/08/05 01:23
종교는 용서를 도매로 팝니다. 그래서 좀 싸지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