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오르는 데에도 수준 차이는 있는 법


그 영화를 본건 순전히 모니카 벨루치라는 배우의 광팬이었기 때문이지, 그렇게도 실제 강간씬일 것이라고 악명 무성했던 장면이 궁금해서 극장으로 쪼르르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정말?). 영화를 다 보고 집에 와서 굳이 무삭제 버전을 열심히 찾아서 본 것도 다름아닌 감독의 의도를 좀더 정확히 파악하고 싶어서였다(정말?;;;;;;). 솔직히 말해서, 왜 강간씬을 실제로 삽입을 해 가며 찍어야 했는지(실제가 아니라고 우기지 말것), 모니카벨루치는 뭐가 아쉬워 그 장면의 촬영을 허락했는지, 같이 출연한 실제로도 남편인 뱅상카셀은 무슨 마음로 그딴 씬을 용납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공동제작자였어서 마케팅을 생각한건가.

어쨋든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객과 평단에 기억되는 영화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정도면 됬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과도한 폭력씬이라던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롱테이크라던지 (도대체 강간치사씬을 9분동안 아무 편집없이 실시간으로 찍어댄 이유는 전혀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의 옹호자들 손꼽는 이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Irreversible한 것을 eversible한 화법으로 보여주면서 극대화 시킨 비극에 있다고 한다. 조금 더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보통 영화라면 마지막에 놓을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은 보통 영화라면 도입부 일테고. 뱅상카셀이 체포되는 장면이 오프닝을 장식하고,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 강간범에게 뱅상카셀이 복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화기로 얼굴을 연달아 찍어대는데 역시나 끔찍하게 긴 롱테이크다) 그리곤, 뱅상카셀과 모니카벨루치가 다툰후 외출한 모니카 벨루치가 강간후 살해 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둘의 행복한 모습이 나오고, 임신한 모니카 벨루치가(기억이 가물가물) 풀밭에 누워 한가로이 책을 보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그리곤 독백. "시간은 모든것을 파괴한다"


그래, 돌이킬 수 없는 대상은 시간이었다. 이 영화는 시간을 도치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영화는 Irreversible한 것을 eversible하게 보여줄 수 있는 허구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폭력이 불러온 비극은 돌이킬 수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시간의 도치가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달아 보여지는 과도한 폭력씬에 눈이 먼 관객에게, 영화 후반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감독이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후반부에 이르를수록 영화가 구태의연해지고 설명적이 되어간다. 엔딩은 정말 낯뜨겁다. 자극은 점점 더 강해질 수는 있어도, 점점 더 약해져서는 절대 안된다. 인간의 통점에는 점점 더 큰 자극만이 느껴질 뿐이니까. 차라리 시간의 정순으로 영화가 편집되고, 빛을 더 강조하였다면, 과도한 어둠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어쨋든,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객관적인 사실로 정의될 수 있는 건, 이 영화가 시간의 '도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영화였고, 이보다 더 잘한 컨텐츠는 얼마든 있다는 것이다. '메멘토(memento)'만 해도 시간은 역순으로 흘러가지만, 이건 그저 시간을 뒤집어 놓은게 아니라 충격적인 반전을 위한 교묘한 문법이었다. 이 영화의 시간을 정방향으로 편집해 버린다면, 그 영화적 가치가 소멸해 버린다. 아니, 아예 영화를 만들 이야기 꺼리가 되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탐정놀이를 하던 관객에게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거의 진실은 폭탄이나 다름다. 적어도 메멘토는 시간의 도치를 충격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하였다. 이 영화가 기가 막힌건, 시간을 돌이켜도, 심지어 실제로 거꾸로 돌린다고 해도, 주인공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그는 시간이라는 선형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어떤 점 안에 갇혀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의 전적인 도치는 깔끔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일단 인간의 의식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인간은 시간의 정방향에 익숙해 있어, 시간의 도치를 통한 논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서 라던지, 감춰뒀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제한적으로 이것을 활용하는게 훨씬 보기 좋다. 게다가 위의 영화들도 사실상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사건의 전체적 시간을 몇토막으로 나누어서 그 늘어놓는 순서를 거꾸로 했을 뿐이지, 각각의 토막에서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지 않던가.

느닷없이 이 영화들을 끄집어 낸 이유는, 시간을 거꾸로 뒤집는 화법을 정말 이상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드디어 만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시간을 전적으로, 온전히, 시종일관 역행한다. 마치 폭포가 처음부터 이렇게 거꾸로 흘렀다는 듯이 기운차게 거꾸로 흐르는 장면과 조우한 것 처럼, 불가해한 감동. 아아. 로저 젤라즈니는 진짜 천재다. 진짜 천재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로저 젤라즈니의 아껴두었던 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그의 모든 장편 못지 않은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훌륭한데(비록 표제 작품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제목만큼 감동적이지는 못했지만), 단연 '프로스트와 베타'가 로저 젤라즈니의 매력을 가장 잘 말해주는 최고의 단편이다. 신화, 남성성, 사랑, 상징, 그리고 인간의 본질.

세상의 모든 별을 긁어 모아다가 그 작품에 다 주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로 대단한 작품은 아주 짧은 '성스러운 광기'. 젤라즈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SF적이며 또 가장 젤라즈니스럽지 않다. 그의 작품세계의 어떤 독특한 특이점 같은 작품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시간을 정말로 제대로, 성공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은 이전에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혹시라도 아는 작품이 있으시면 소개를 부탁드린다. 정말 앞의 두 영화를 보는 시간의 2%만 투자하면 완독할 수 있지만, 가슴속에 체류하는 시간은 2000%이상 더 길었다.

단 한번의 잔혹함도, 롱테이크도, 집요한 묘사도,  의도된 반전도 없이,
순간의 소중함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의미심장함을
뇌리 깊숙히 박아 넣는다.

이 시점에서라면 '돌이킬 수 없는'따위는 돌이켜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좋아라하는 블로거 쿄롤님의 블로그 이름이 왠지 먼저 생각나게 되는, 장르문학계의 전설 로저 젤라즈니의 단편 모음집. 읽고보니 유난히 사랑이야기가 많다. 로저 젤라즈니의 장편에서 느끼지 못했던 빠심이 그의 단편집에서 불타오르게 될 정도로 대단한 작품들이 괴물처럼 모아져 있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굉장하다. 사랑과 매력적인 남성성과 신화의 원형들이 매 단편마다 농축되어 있어, 단편을 두개 이상 읽으면 심지 어지럽기도 하다. 단편은 별루, 라며 나처럼 미뤄놓았던 분들이라면 지금 당장 손에 들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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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 | 2007/09/28 11:30 | 낙원 책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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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ranberry at 2007/09/28 13:49
많은 실력있는 작가들이 그렇듯이 로저 젤라즈니도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더욱 농축된 감동을 느낄 수 있죠. 저도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단숨에 읽어내리기 보다는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내리며 아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본문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게, 아무리 새로운 방법론을 만들어내더라도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 하면 후세에서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 한다...라고 하죠. <샤이닝> 이전에도 스테디캠 기법은 존재하기는 했지만 누구나 스테디캠의 시초를 <샤이닝>으로 기억하는 것처럼요. (실제로 스테디캠이 최초로 사용된 영화는 76년작 <Bound for Glory>라고 방금 위키에 찾아보니 있군요 -_-*)
Commented by 스미스 at 2007/09/28 16:38
프로토스...라니요;;;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라. 사실 저 영화를 보긴 했는데 기억에 남은 게 거의 없습니다. (엔딩에 베토벤 피협 4번이 나왔던가요?) 오잉 님 설명을 듣고 보니 영화란 게 '의도적인 보여주기'라는 게 다시금 실감이 갑니다. 시간 순으로 인과적 배열을 해보면 주인공들의 체험이지만, 뒤섞어놓으면 관객의 체험이 됩니다. 주인공들과 관객은 전혀 다른 체험을 한 거죠.
Commented by 오잉 at 2007/09/28 17:10
[크랜베리님] 단편은 항상 한권을 다 읽는것이 힘들어서,최후로 미뤄 놓고는 했죠. 단편이라고 해서 절대 데미지가 약하지가 않으니까. 그리고, 심지어 돌이킬수 없는은 최초도 아니었으면서 더 잘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크랜베리님이 SF를 좋아하신다는것은, 글들을 보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젤라즈니를 사랑하시는군요.

[스미스]님, 헉!!! 다쓰고 한번 쓱 훓어보면서도 몰랐군요. '프로토스와 저그'도 아니고-_-;;; 포로토스라니;;;;;;;; (감사합니다 ㅜㅜ)

그렇군요. 맞아요~ 영화적 '문법'이라는걸 적용하면서, 체험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바뀔 수도 있는거겠군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던것을 의도적으로 중요하게 의식하도록 할 소도 있는 거지요.
Commented by 중간자 at 2007/10/01 13:16
아직 위의 저 책을 읽기에는 문학적 내공이 부족한지라...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by 오잉 at 2007/10/04 16:10
무슨 겸양의 말씀을;;;제가 비록 젠체 하긴 했지만,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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