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더 노화되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솔직히 말하자면 난 17살 이후로 계속 퇴화되고 있다. 그때 보였던 것들이, 그때 들렸던 것들이, 그때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덜 느껴지고 있으니까.  생각의 깊이, 자신 안으로의 스쿠버 다이빙의 기록은 그 즈음 어느 때인가 최고 기록을 달성한 이후, 조금씩 얕아 지고 있다. 생존에는 생각이 필요없기 때문일까. 지하철을 타면 두려운 듯 꽁꽁 동여맨 자신의 구명조끼를 꽉 부여안고는, 그 탓에 자신 속으로 단 1미터도 잠수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둥둥 떠서 부유하고 있다. 뭐, 나도 이제 2~3미터니 머지 않았다. 한 개인이 점점 발달한다는 건, 역사 진보론 만큼이나 헛소리다. 그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퇴화하고 있다.

예전에 틴벨이라는 벨소리가 한창 유행했었는데, 인간의 청각이 어느 시점에서 정점을 이룬 후 점점 퇴화하는 특성을 살린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십대들은 들리지만, 늙은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특정 음역대의 밸소리. 어느날 교실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깔깔깔 웃는다. 하지만, 선생은 이유를 알 수 없다. 당연히 당혹하여 개패듯 패겠지. "야 이 개새끼야. 도대체 웃는 이유가 뭐야?"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는데, 선생님은 전혀 모르시는 것 같길래..." 

'십대들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내뱉지만, 사실 당신은 이미 십대들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 없을 뿐이다. 나 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한해 한해 퇴보하며 그저 기억의 창고에 잡동사니를 쌓아 두고 있는 격이다.

아마도 내가 이런 영화에 미치는 것은 정말 그때가, 그리고 그들이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감지하고 통증을 느끼는 센서가 가장 예민하던 시절. 이미 무뎌져 버린 센서로는 감지가 되지 않는 그들의 분노와 슬픔이 이 영화안에 넘쳐난다. 그리고 소통되지 않는 관찰자인 우리는 상실감을 느낄 수 밖에. 이것이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이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감독/이와이슈운지

이 영화의 평 중 가장 불쾌했던 건, '일본판 나쁜 영화같았어'라는 식이다. (홀리형;;). 이 영화는 릴리슈슈라는  아티스트의 팬들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일본이라는 땅에서 살고 있는 14살들의 영혼을 담아내려 이와이 슈운지가 혼신을 다한 흔적이다. 이와이 슈운지 스스로 어떤 인터뷰에서, 유작으로 삼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영화중 단연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등은 피크닉). 구 시네코아에서 했었던 검은 이와이전에서 처음 본 이후 DVD 및 OST 풀세트를 다 구매했을 정도로 빠돌이 짓을 좀 했다.
 
이와이 슈운지는 러브레터의 흔적이 너무 커서 오해 받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훌륭한 감독이다. 피크닉과,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일본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와이가 뛰어난 점은 10대적인 사고를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아직 센서가 잘 작동한다는 것. 그의 작품에 몇번 출연했던 아오이 유우는 그의 그런 측면이 섬뜩하다고 인터뷰 한적도 있을 정도니까.

릴리슈슈는 제작과정도 무척 재미있다.

2000년, 이와이 슈운지가 인터넷으로 소설을 연재한다고 공개가 되었고, 해당 날짜에 오픈된 사이트는 '릴리 슈슈'라는 한 가상의 뮤지션의 팬사이트였다. '릴리홀릭'.이 곳에는 뮤지션 '릴리슈슈'의 상세 정보들(음악이나 프로필,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고, BBS(자유게시판)가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이와이 슈운지는 이 게시판에서 몇개인가의 아이디로 번갈아가며 글을 올렸고, 이 가상의 인물들의 팬으로써의 일상에 대한 게시물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게시판에는 방문객들도 회원 가입후 자신만의 아이디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단, 그들도 릴리슈슈라는 가상의 뮤지션에 대한 팬으로써 이 이야기에 참여해야 했다. 그들은 이 독특한 소설의 독자이자 등장인물이 되었다. 그들은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속의 세계로 풍덩 들어가 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와이 슈운지는 이 곳에 참여한 독자들을, 영화속의 릴리슈슈의 콘서트 장면에 출연시켰다. 가상의 가수에 대한 팬으로써. 그들 모두를 위한 캐릭터와 대사, 행동방침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을 정도로 집요한 인간이다)

이것이 바로 리리슈슈의 시나리오가 되었으며, 실제로 영화상에 그때 당시의 게시물들의 내용 그대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와이는 가짜 팬사이트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릴리슈슈라는 가상의 뮤지션을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해 실제로 앨범까지 기획하여 발매하였다. 뮤직비디오도 몇개 제대로 만들었다. 마치 진짜 그런 가수가 있는 것 같은 완벽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 덕에 이 영화는 완전히 픽션이면서도, 다큐멘터리 못지 않은 실존감으로 가득차 있다.

못보았다면, 꼭 한번 보시길. 긴 영화지만 길게 기억이 남으리라 장담한다. (가능하다면 DVD를 꼭 구해서 보는게 좋다. 서플에 제작과정과 몇몇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릴리슈슈의 뮤직비디오 몇편등등이 담겨 있는데, 놓치면 아쉬울꺼다)


08.  공명 / "호홉" by 릴리슈슈
영화 OST와는 별개로
영화속에서 릴리슈슈의 새 앨범으로 언급되었던 음반을
실제 릴리슈슈라는 이름으로 내 놓았던 음반.
이와이 슌지 감수아래 타케시 코바야시가 프로듀싱했다.
영화에서 잠깐이라도 나왔던 곡들 뿐 아니라,
제목만 나온 곡들도 모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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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 | 2007/09/03 13:48 | 낙원 영화 | 트랙백(1)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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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woody's film.. at 2007/09/03 15:10

제목 : 슬프도록 아름다운 - 이와이 슈운지의 <릴리 슈슈의..
'슬픔이 없는 자유의 하늘로 날개 펄럭이며 가고 싶다' 영화 중반부이자 현재, 합주를 준비하던 유이치의 반 친구들을 반주를 맡게 된 호시노의 첫사랑 칸노를 왕따시키고 그 대안으로 아카펠라 곡을 선택합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가사이자 아이러니의 극치죠. 어쩌면 10대의 그들은 모두 슬픔이 없는 하늘을 동경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대면하고 체계에 편입되는 나이, 경쟁과 시기와 폭력과 슬픔을 깨닫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가 바로 &lt;릴리......more

Commented by ArborDay at 2007/09/03 13:59
영화를 보고 저렇게 힘들었던 시절을 보내온 과거의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지기도 했답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힘들지만. ^^
Commented by woody79 at 2007/09/03 15:13
전 저 때 시기에서 고민의 양은 조금 늘었는지 모르겠지만 깊이는 떨어지는 것 같아요. 네, 저도 퇴화하고 있죠. 급속도로. 어떻게 부여잡고 싶지만.
공감 만땅이네요. 왠지 영화 봤을 때 처럼 우울해지는 걸요.
참, 네오이마주 배너는 어떻게 거신 거랍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Commented by 오잉 at 2007/09/03 15:23
[ArborDay님] 트랙백 거신 글 잘 보았습니다. 유이치와 호시노는 서로를 갉아 먹는 존재였지만, 필리아와 푸른고양이는 소울메이트일 정도였다는 것이 새삼 아이러니 했다는 사실이 기억났어요.

[woody79님] 블로그에서 말씀하신것 처럼 정말 아름답고 처연한 영화지요. 덕분에 우린 우울해지고요. 트랙백하신 포스트에 영화내용이 너무 잘 설명되어 있어서, 제 포스트와 좋은 페어를 이루네요. ^^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네오이마주 배너는 걍 페이지메인 일부를 캡처해서 도용하여 쓰고 있습니다. ㅜㅜ 설마 나쁜짓인건 아니겠죠.
Commented by --G-- at 2007/09/03 16:25
17세가 가장 섬세한 시기셨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 17세는 별로 제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정도로 아름답고 섬세한 시기도 아니었거든요. 맑고 투명한 감수성이라는것은 동경만 할 뿐 평생 가져본 적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Commented by woody79 at 2007/09/03 16:28
아뇨. 제가 이쁜 배너로 바꿔드릴까 해서요.
네, 오랜만에 릴리슈슈 같은 좋은 영화가 떠올려져서 우울과 행복이 교차하는데요...ㅎ
Commented by 홀리 at 2007/09/03 17:31
워스트를 먹었네? 낄낄-
너한테 백번 칭찬받는 것보다 워스트 한판이 기분좋군! *
Commented by 오잉 at 2007/09/03 19:12
[--G--님] 저에게 "가장"이었다는 거지, 그때의 치열함의 정도가 남들에 비하면 "겨우"정도였겠죠.

[Woody79]님, 블로그에가서 이미지 링크 얻어서,바꿨습니다. ㅜㅜ 훨씬 나아졌어요. 감사합니다~

[홀리님] 워스트에 기분이 좋다니 꽤나 변태스러워서 칭찬해 줘야 겠군.
Commented by hotcha at 2007/09/03 19:42
기억으로 뒷걸음치는 일은 조심스럽습니다. 깔깔거리며 웃었던 일이 별로 없었던 한 때로 돌아가는 것은 더욱 겁나는 일입니다. 슬픈과 아름다움은 때론 동격입니다. 인연이 된다면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때때로 소개시켜주시는 좋은 영화와 책들, 음악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Kong at 2007/09/04 01:19
안녕하세요. 저도 참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역시 "오잉"님의 주옥같은 리뷰를 보니 또 보고 싶어집니다. ^L^
Commented by Miren at 2007/09/04 01:54
저런 영화를 보고도 그저 단순한 영화라고 밖에(그저 가상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17살부터 이미 전 10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성숙한 것도 아니었고, 어린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냥 멍한 상태였다고나 해야하나..
사춘기란 것이 없었다고 해야하나. 고민이 별로 없었던 시대였죠.
주위에서 많이 보이는 그런 10대들과는 전혀 달랐던..
지금 생각하면 살짝 안타깝나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즐겼으니까요.
....아니 그 시기부터 이미 세상을 왕따시키는 능력을 길렀던 것일수도...
Commented by 오잉 at 2007/09/04 09:39
[hotcha님] 어떨때는 정말 자지러지듯 웃기도 하고, 바보같은 기성세대들을 한 껏 비웃기도 하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위협에 소심하게 떨기도하고, 이제 막 시작된 인생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죠. 항상 잘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kong님]항상 콩님 블로그에 덧글을 달 수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일견 그럴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중한 글들 매일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뜨겁게 분노하면서도, 아직도 대한민국을 애정을 가지고 보시는 것 같아 더욱 탐독하게 됩니다.

[Miren님] 그 특유의 멍함도, 그 시절을 규정하는 어떤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게 슬프게도 의식을 잃지 않는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존재더군요. 그 시절에 멍하게 있는 것은,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마구 마구 뒤섞이며 휘몰아 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멍하지만, 치열한거죠.
Commented by Romantic걸배 at 2007/09/04 10:04
너무너무 좋네요-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나면 뭔가 이전에 갖고 있던 그 아릿한 감정들이 무뎌질 거 같은 두려움을 항상 간직하고 있어요- 저도..ㅎ
이 영화 정말 좋지요-! 보면 볼수록 뭔가 제 감정을 날카롭게 긁으면서 예민하게 만드는 거 같애요!
Commented by 아잉뽕 at 2007/09/07 17:01
내가 이거 보다 잤나?-_ - 기억이 안나.
더 늙기전에 봐야겠다 흐
Commented by 민지님 at 2007/11/11 00:30
전 단지 이영화의 음악이 좋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같은 느낌이 좋아
리리슈슈노 스베테 같은 느낌.(뭐랄까 일본어 발음 응이라던가 너무 매력적이고..받침떼는것도 울림잇어 좋고..)
디비디를 사버렸습니다만 (출혈이..;;)
전 영화를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왜일까요
일본영화는 컴퓨터로 보면안되는것같아요 전 정지를 잘누르거든요
하루키나 끔찍한 얘기를 적막한가운데서 한달까 아름다운 가운데서 아니다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데 현실감없게 끔찍하고 잔인하달까..
표현이 조금 그렇나요?
음 ...저도 간만에 놔 두었던 디비디가 생각나서 보러갈까싶네요-
보다 끈부분은 자위를 당하는 이지메와 아오이유우도 같이 이지메를
당하는부분? ㅠㅠ 흐음..

아참 덧붙이자면- 저 광고 소모임인데다(과가 시각디자인인지라)
선배들중에 웰* tvw*에 다니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광고 정말
재밋긴해도 사람 할 직업이 아니라던데 연봉이야 삼성 저리가라지만.
제가 졸업할때쯤에 저 뭘하고있을까요- 혹시 광고회사를 간다면
오잉님이 상사가 아니실런지 재밋는 상상 한번 해봅니다 하하.
Commented by 오잉 at 2007/11/13 09:44
[민지님] 어, 의외로 사람 할만한 일입니다. 같은 조직내에서도 팀이나 개인 성향에 따라 업무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죠. 민지님이 제 밑으로 오신다면야, 맨날 영화보러 다녀며 놀겠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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