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미국, 그리고 위대한 보수주의


미국이라는 나라는 사실 '이상적인 국가'이다. 그 나라가 세워진 땅에 흠뻑 스며든 '진짜 주인들'의 핏자욱에 대한 이야기나, 제국적 취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두자.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미국의 역사 그자체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유지되는 구성성분, 혹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니까.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이상성은, '늙지 않는 국가'라는 형태로 표출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선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데모그라픽적 후퇴를 겪는다. 노령층의 비중은 급격히 늘어나고, 노동가능인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출산률이 급격하게 하락하며, 노동 가능인구의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절대수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나라가 점점 늙어 쪼그라드는 것이다. 아직 선진국의 문턱에 그림자조차 내비지치 못한 대한민국의 충격적인 출산률은 다 크지도 못한체 늙어버린 조로의 상징처럼 보여진다. 뭐 어쨋든, 이런게 대부분 국가들의 운명이며, 선진화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슈퍼파워임에도, 인구통계학적으로는 여전히 다이나믹하다. 유럽대비 노동가능 인구의 비율은 50%가까이 높다. 청춘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견 여배우 인터뷰의 단골 질문처럼 "젊음의 비결이 뭡니까?"라고 묻는다면, 미국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민"이라고.

이민은 인구성장의 정체를 겪고 있는 국가가 가장 손쉽게 노동가능 인구를 확보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당연히 유럽의 선진국들도 적극적으로 이민정책을 권장하고 있거나, 권장했었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문명간의 충돌이 수용되지 않고, 골치아픈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인데, 대부분 국가의 정체성에는 그들만의 오래된 민족주의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민은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을, 소수의 고립과 갈등을 잉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달랐다.  미국의 인구 증가의 절반 이상은 이민이 차지한다. '어메리칸 드림'은 '코리안 드림'과 달리 그나라에 들어가서 한몫 챙겨 먹튀를 하고 싶은 꿈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메리칸 드림'은 예로부터 '어메리칸'이 되고 싶은 꿈이었다. 과거 이태리, 아일랜드, 멕시칸, 중국인들이 이 단어를 가슴에 품고 미국에 들어들 갔다.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혹은 꿈을 이룰 수 없는 나라를 버리고 말이다. 한 세대정도 갈등을 겪은 후, 지금 그들은 미국의 허리를 지탱하는 훌륭한 중산층이자, 명실상부한 주류 시민계층으로 수용되었다. 이민자가 아니라, 진짜 미국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융화되지 않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마는 이민이, 미국에서는 비교적 부드럽게 수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까놓고 말해, 원래부터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명실상부 미국의 주류사회 구성원으로 일컬어지는 백인, 3억가량의 인구에서 2억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그들 조차, 독일계 5000 만,아일랜드계 4000 만.프랑스계 1500 만, 이탈리아계 1200 만.러시아,폴란드등 동유럽계 800 만 등 2/3 이상이 따지고 보면 이민자다(꽤 오래된 자료이므로, 지금은 더 늘었을 것). 초기 정착민인 영국계 앵글로색슨? 그들도 따지고 보면 이민자다.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꿈을 찾아 건너온 자들이다. 원래 집주인을 죽여버리긴 했지만.

여튼,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정말 흥미롭다. 수없이 많은 민족주의가 유입되어 융화되고 뒤섞이면서 그냥 미국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족주의는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는 유용한 접착제로 사용되긴 하지만, 민족주의는 때로 맹목적인 단결과 극한의 이기심을 잉태하고 종국에는 연합국가의 분열을 야기한다. 마치,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화학 본드와 같은 것이다. 잘 붙지만 심각한 환각작용이 있다. 그런데, 미국은 민족주의가 없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자, 가장 많은 민족주의를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부작용이 매우 적은 밥풀정도로 다양한 민족주의가 유기적으로 작용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미국은 하나의 작은 지구이다.

별로 발끈하거나 그럴필요 없다.
내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미국에 대한 찬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개인적 선호순위에서 미국은 하위권이다. 다만, 미국의 보수는 무엇이 되어야 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이다.

난 보수를 이렇게 생각한다. 무슨일이 있어도, 그 나라의 핵심적인 가치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 미국다움에 대한 수호자들. 그들이 미국의 보수라고.  미국의 본질, 미국의 에센스, 미국이 잊지말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 바로,전 지구적 보편성이라는 것이다. 이민의 증가를 범죄의 증가나 일자리의 강탈 혹은 백인의 주류사회에서의 이탈 등의 핑계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보수가 아니다.  

미국은 꿈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꿈과 에너지를 지니고 들어간다.미국은 그 꿈과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나라, 그럴 자격이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코스모 폴리스적인 국가로, 자신의 나라에 염증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피처가 될 수 있어야 하며, 존경할 만한 미국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구 경찰 국가가 아니라, 유니버셜 네이션으로써 인류 보편적 가치의 보존자이어야 하며, 전 세계를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국가가되어야 하며, 기회균등이 낙원, 다이나믹한 꿈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400만의 이민자들이 독립하여 설립한 나라가, 250여년만에 3억이 넘는 국가가 된 힘, 폭발적 이민이 가능했던 힘은 '미국의 이상성', 본질적 '아메리칸 드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의 목표는, '아메리칸 드림'이 가진 원래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경제적 차원 뿐 아니라, 국가안보차원에서도 실리적이다. 국가 위기(소꿉장난 같은 테러들)에 대한 부시행정부식의 반응은 바보짓이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가 없었다고 가정하면, 그 어떤 테러리스트에게도 미국은 공격 대상으로 삼기 가장 싫은 타국이 될 것이다. 이 나라 어디에선가 자기의 형제 자매들이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키우는 것은 그 어떤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국가안보의 자산이 된다. 

스틸이미지

아마도, 나는 이것이 '그랜토리노'의 이야기 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미국다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고, 카우보이 출신의 늙은 감독이  이야기하는 '위대한 보수주의'에 대한 한수 가르침이 아닐까. 미국의 대표적인 백인 보수 꼴통처럼 보이는 노인, 마초이즘과 카우보이냄새가 뼛속깊이 박혀 있는 포드자동차의 의인화 같은 인물. 하지만 알고보면 그는 폴란드 촌놈 출신이고, 주변의 평범함 백인 보수주의자 친구들도 모두 아일랜드 이민자, 이탈리아 이민자 였다. 그의 가족과 그의 친구들도 언젠가 떨리는 마음으로 미국에 들어온 타인들이었으나 얼마간의 갈등 끝에, 어느순간 미국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졌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른 후 , 그들은 어느 순간 뼛속깊이 어메리칸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 앞에 낯선 문화의 몽족이 나타나고, 잠시의 갈등 후에 이웃으로써 그리고 새로운 미국인으로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가 속해있던 사회가 언젠가 그랬듯이. 그리고 다른 피부색과 다른 문화를 지녔지만 형이상학적으로 한 나라의 민족이 되어버린 그들을 지켜주고 보듬으며 같이 살아가기 시작한다. 어느날, 점점 커져가는 위협으로부터 이웃을 보호하기 위해 노인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한다. 예전 카우보이 시절이었을때 처럼 (영화 내부적으로는 한국전에서 처럼), 총을 꺼내는 방식으로는 이웃을 영원히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알고 있다.

그는 댓가 없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능한한 오래 지역사회를 지탱해 줄 평화와, 그리고 더 오래 미국다움을 지켜줄 수 있는 정신을 선물로 남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말한다. 내가 연기한 그 노인이 바로 '미국'이라고. '미국'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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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 | 2009/04/24 15:49 | 낙원 영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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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랜토리노 재밌다. 평은 위에 뭐 많이 쓰여 있는 것 같고. ... more

Commented by 오... at 2009/04/24 19:30
이 영화 꼭 봐야겠군요 ^^ 감사 합니다
Commented by 오잉 at 2009/04/25 13:25
메시지를 생략하고 보더라도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Commented by 인생은아름다워 at 2009/04/24 19:44
미국이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미국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에 대해서 잘 써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다 어디에 숨었지 ㅜ.ㅜ
Commented by 오잉 at 2009/04/25 13:26
그러게요. 보수라는게 내 밥그릇만 보이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 아닌데 말이죠
Commented by starrynigh at 2009/04/24 19:56
풍부한 이민자 노동력이 노령화를 상충시킨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9/04/24 21:21
원래 그렇죠
그걸 나름 제대로 할 수 있단 나라가 몇개 안된단게 문제지. (..)
Commented by 오잉 at 2009/04/25 13:27
원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이민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곤 합니다
Commented by 편성국원 at 2009/04/25 01:29
아쉽게도 용광로인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Commented by 오잉 at 2009/04/25 13:27
좋든 싫든 그게 미국의 장점이죠
Commented by ZOON at 2009/04/25 10:48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관심이 가네요.
Commented by 오잉 at 2009/04/25 13:28
기대하고 봤는데도, 괜찮았습니다. 물론 본지는 거의 보름이 넘었지만;;
Commented by 홀리 at 2009/04/28 13:53
(개인적으로 낯간지러웠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넘어서 주신거냐? *
Commented at 2009/06/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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