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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옛날부터 청소년과 관계된 상투적인 문구 중 하나인 "아직 자아 정체성도 확립되지 않은"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항상 어른의 필수조건은 '자아 정체성'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청소년시절부터 나도 언젠가 그놈의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는 날이 올 것이고, 그러면 나도 어른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자아 정체성을 단순화 시켜 '내가 누군지를 잘 아는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조각조각 무엇인가 맞춰보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이되는 직소퍼즐처럼 '착' 완성될 날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아는 상태라는 것은 정치적,문화적,사회적,성적 등등의 나의 취향이 정립되는 것이고,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알게되는 것이고 (상투적으로 꿈을 가지는?), 나만의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 그런 상태가 바로 완전한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들어 자주 드는 생각인데, 나는 아직 자아정체성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어른이 되어야 할 나이를 한참 한참 넘었는데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정신장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 ........자넨 꿈이 뭔가?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류의 단순한 질문에 대답을 곤란해 했던 유치원 무렵 부터의 혼란. 어릴땐 다들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야 되고 싶은게 없는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되고 싶은게 바뀌니까. 뭐, 꿈에 대해 우유부단 할 수 밖에 없잖아? 그런데, 지금도 그상태다. 아직도 되고 싶은 것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 내가 택한 직업을 꿈꿨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 일로 꿈이 꾸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하면 할 수록 잘모르겠다. 과연, 우리가 창조한 결과물이, 시장주의의 꽃이, 세상에 0.1그램이라도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자주든다. 사람들을 부유한 노예로 만든 그 시스템의 한 몫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따위의 상념말이다. 현실적으로는, 가끔씩 억지로 받아야 하는 뻘 교육에서 '주주의 최대 만족'따위의 단어를 들으면 '빠직!' 해 버리는 나에게 과연 이 일이 맞는가가 문제다. 세상에는 이 일이 꿈인 아이들도 있지만, 꿈을 위한 노력에 게을렀던 나에겐 그저 '다른 것 보단 나에게 맞겠지' 정도의 선택이었다. 다행히 잘 맞기는 한다. 그래서 게으른 천성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하고 싶은 건 많다. 그리고 자주 바뀐다. 꿈이 '부자'인것은 아닌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긴 했는데, 그래도 돈은 많이 벌어야 한다는 단서는 꼭 붙는다. 이건 뭐.... 청소년 맞다. 2. 예전부터 나는 내가 정치적으로 보수라고 생각했다. 슈~퍼 자본주의가 양산해낸 버라이어티 쇼핑교를 간절히 믿었기 때문이다. 패션회 보다는 가젯회에 가깝고, 아마도 방언까지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닐까한다. "빵상!" 알다시피 지금의 사회가 이룩한 정도의 쇼핑천국은 초~경쟁의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신앙주의가 아니라면 이루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보수라는게 창피하다. 이제 정말 가망없는 체제라는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경쟁이 이루어낸 눈앞의 블링블링함은 알고보니 우리집 장농속 금송아지 분실과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말마따나 소비자 오잉은 팔딱팔딱 뛰고 있지만, 시민 오잉은 야산에 묻힌지 오래였다. 모두들 그런 자아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듯 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쇼핑교 주말예배와 인터넷예배에 자주 참석하기는 하지만 눈앞에 드러난 시스템의 허망함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정치적인 입장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배게에서 머리를 뗄 때 마다 좌빨과 꼴통사이를 왔다갔다할 지경이다. 정치적 정체성을 아직도 찾는 중이다. 3. 문화적 성향도 여전히 청소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단적으로 음악을 예로 들어보자. 음악으로 어른이 되는 순서는 대충 이정도 인듯 했다. 유년기 동요, 소년기 대중음악, 청소년기 질풍노도 지랄맞은 각종 장르들, 청년기 재즈, 중년기 클래식.... 이렇게 딱딱 '음악 성향'이라는 정의 내릴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이 생겨나는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 나의 CD장을 보면, 중고등학교때와 다른 점이 없다. 여전히 성향을 알 수 없다. 분명히 땡겨서 산 음반인데, 모아놓고 보면 도저히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질풍노도도 있고, 블루스도 있고, 일렉트로니카도 있고, 일본 아이돌음악도 있고...;; 최근에 버닝하고 있는 두 음반은, Antony & the Johnsons의 새음반 The crying light와 Lilly Allen의 새음반 It's no me, It's you 다. 전자야 어디선가 젠체할 수도 있는 거지만, 릴리 알렌은 아이돌이잖아. 아조씨가 듣고 다닐 음악이 아니다. 요즘에는 다 그렇다고? 소시나 원더걸스도 아저씨팬이 아주 많다고? 웃기네. 소시나 원더걸스같은 애들은 원래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거 아냐? 베이비페이스의 순진하고 섹시한 아이돌 비주얼은 야동 다운로드 So hot 컨텐츠 아니냔 말이다. 뭐, 그런 애들이 1번부터 9번까지 쭉 서있는거, 원래 아저씨들이 지하에서 즐기는 풍경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릴리알렌은 다르다. 진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아이돌이란 말이다. 반항하고 사고치고 개 꼴통짓 하고 여기저기서 팬티나 보이고 '뭘?'하며 센척하지만 졸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악동 캐릭터. 근데 꽤나 실력있는 싱어송라이터. 이건 삐뚤어진 십대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라구. 어른들은 졸라 싫어하는 재수없는 젊은놈의 전형이란 말이지. 애들은 그런 캐릭터에 뿌듯해하며 미치는 거고. ![]() ![]() ![]() ![]() 무대에서 담배피고 맥주벌컥, 아무데서나 팬티보여주고 사람패는 아이돌; 그런데도, 좋아 죽겠다. 노래부르는 표정도 매우 러블리하다. 1집도 나쁘지 않았고, The Bird & the bee의 냄새가 폭폭 풍기는 2집은 완전 대박이다. 특히 The fear의 사랑스런 치기로 가득찬 가사도 완전 좋다! 'everything is cool as long as I'm getting thinner'라니! 너무 깜찍하잖아~ 괜찮어 릴리 ㅜㅜ 통통한게 더 귀여워 >.< .............. 이러구 있다;;; 어쩔;;;; 이런 빠돌이 상태 몰입은 중고딩 이후로 불치의 병이다. 그리고 그 빠심을 봉헌하는 대상은 자주 바뀐다. 바뀌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고. 아무튼, 음악도 정체성을 좀 찾아야 한다. 뭐,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문화생활 전체의 문제지만... (그런데, 가만..... 릴리, 85니까 너도 이제 완전 어른이잖아! ;;;; 너도 나랑 자아 찾으러 떠나야 하는거 아냐?) # 심각하게 시작해서 잠시 빠심;;으로 궤도이탈을 하긴 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나란 인간, 심각할 정도로로 미숙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의 어른들은 확실히 어른이었다. 자아정체성이라는 단어따위야 집어치워도 변하지 않는 '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크던 작던, 분명히 그리는 미래가 있었고, 옳건 그르건 변치 않는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한번 생성된 빠심은 30년째 조용필 팬, 뭐 이런식으로 변하지 않고, 꼴통짓 하는 남편을 모질게 참아 줄 수 있는 결혼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부모라는 정체성은 무엇보다 굳은 신념이어서, 개고생으로 대학졸업시키고 직장보내고 아이낳고 그 아이가 다 클때까지도 뒷바라지를 하신다. 그분들이 이루고 있는 '나'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철옹성 같았다. 진실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보였다. 사실, 우리 세대와 우리 밑의 세대들에게서 나같은 미숙아들이 많이 태어난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철없는 것들, 물컹물컹 무정형의 인간들이 많이 목격된다. 완전 저레벨 몹이지. 우리 이하의 세대들은 조숙하다. 초딩때 정도면 어느정도 속물이 된다. 부자를 동경하고, 거유와 반반한 얼굴의 가치도 알고, 이름만 아이돌 그룹의 끈쩍한 가사도 느낀다. 성적으로 어른의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런데, 그 조숙의 상태로 성장이 멈춘채 그냥 늙어 가는 것 같다. 20살짜리 청소년, 30살짜리 청소년, 40살짜리 청소년, 50살 짜리 청소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이 어른을 별로 권하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지금의 시스템에서, 사람들이 나이에 맞춰 어른이 되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어른들은 생각한다. '나는(혹은, 내 가족은) 무엇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말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구매한다.' '저건 멋있긴 하지만 나에게 필요없다.' '이 금액은 자산관리 차원에서 비용이 크므로 지금은 구매시점이 아니다.' 어른들은 흔들리지 않고, 현혹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에 큰 예산을 책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시장내에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제품의 코어타겟은 십대후반 이십대초반이다. 그들은 흔들리고 충동적이고 대책이없는 소비자다. 우리가 찬양하는 브랜드라는 것도, 사실은 제품에 내재되 있지는 않지만, 구매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 수 있는 매력적인 이미지다. 늙은 어린이들의 생각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취제 같은 것. 그리고 어린아이의 손에는 마법의 신용카드가 있다. 그게 지금의 쇼핑천국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 생산과 소비의 역학이다. 그러므로, 이 영광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은 쭉 훌륭한 소비자인 아이로 남아야 한다. 갈등하고 흔들리고 유혹에 약하고 자꾸 변해야 한다. 취향이 자꾸 변하도록 유도해야 또 새로운 제품을 생각없이 살 수 있다. 어른이 되는건 위험하다. 죽을때 까지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거대자본의 손으로 쇼퍼홀릭같은 영화가 나오나? 그래, 다 환경탓이다. 다 음모다. 내가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건 내탓이 아니다! 이러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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