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의 무게
사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이제는 나도 체중관리를 좀 해야하는 나이이고, 그동안 너무 방치한 듯 싶어서 나름 열심히 하고는 있다. 이론적으로는 유태우 박사의 다이어트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 다이어트의 핵심은 매 끼니를 먹되 딱 반만 먹는 것이다. 끼니 외의 먹거리는 칼슘우유 하루 하나(저지방), 당근, 오이, 토마토 정도. 당연히 술도 금지다.

마냥 굶는게 아니라 견딜만 하기는 한데, 하루 종일 어느정도 허기진 상태가 유지되는 느낌이라, 유난히 맛있는 것에 대한 추억들을 많이 떠올린다. 스지가 듬뿍 담긴 일본식 오뎅과 정종이라던지, 문타로의 닭날개와 껍질 꼬치라던지, 곧 없어질 것 같은 인사동골목의 고등어 구이라던지.... 왠지 이런것들이 내가 다이어트 하는 동안 없어질 것 같아 무섭다. 당연히 망상이다. 

먹지 못할 먹거리들에 대한 상상은 종종 깊은 사색이 되어버린다. 당분간 나에겐 현실성이 없는 것들에 대한 상상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생각이다. 스스로 결정한 다이어트에 대한 냉소. 가끔식 걸려드는 먹거리의 영양분을 최대한 체내에 효율적으로 비축하는 쪽으로 진화해 온 동물의 몸으로, 어떻게든 비축하지 않을려고 바둥거리는 노력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과잉과 잉여의 산업사회와 동물적 욕망의 불일치의 씁쓸함.




당연히 먹는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먹는다'를 앞에 둔 우리의 태도는 술자리 개똥철학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살기위해 먹는다는 둥, 먹기위해 사는 다는 둥......  사실 '먹는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탄소기반의 유기체로써 생존을 위한 필수 활동일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의 주요한 구성요소로써 사회적 관계의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고, 우리의 감정의 서랍을 여는 가장 강력한 단서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대학시절 돌아가셨다. 현대사회의 여느 아버지와 아들처럼 성인이 된 이후 그닥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상주로써 서 있는 내내 고민했던 것은, 상상했던 것 보다 슬프지 않다는 죄책감이었다. 나의 인간성은 뭐 이정도구나. 남들이 우는 시점에 같이 울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지으며 장례를 지냈다. 그런 내 모습이, 육친의 상실보다 더 우울했다.

장례를 지내고 한참 후, 신촌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계절도 초여름이고 주위의 풍경도 나의 마음도 샤방샤방 그 자체였었다.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지나다가, 갑작스레, 그냥 길에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아버지와 비슷하게 마르고 강하게 생긴, 그리고 아버지보다는 조금 더 노쇄한 노점상 한 분이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고등학교때 아버지 사무실에 심부름 갔을 때의 모습이 오버랩됬다. 방과후였는데 당시 사업이 바빠서 시간이 없으셨는지, 늦은 점심으로 짜장면을 허겁지겁 먹고 계셨다. 그땐 그게 참 싫었다. 사업하는 사람이 가오가 있어야지. 지금은 그래서 더 슬프다. 생각해보면 그 '허겁지겁 먹는다'라는 행위 자체가 '살아간다'라는 의미였다. 그 허겁지겁 먹는 면발 한가닥 한가닥에 본인의 인생과 나, 어머니, 동생이 얽혀있는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어쩐지 우리 감성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불현듯 길에서 맡은 어떤 음식 냄새에 미소를 지을 수도, 그리워 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다. 어떤 음식은 그저 생존을 위한 칼로리 복합체의 의미를 떠나, 소중한 추억과 기억의 산물이기도 하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밀탑 팥빙수에, 초코다이제스티브에, 그리고 짜장면에 각각 흐믓함과 그리움과 슬픔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개인의 기억이 담겨 있는 것이다.

때론 '먹는다'는 행위는 무한 경쟁의 사회에 길들여 있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기도 한다. 화려하고 모던해진 서울역 한켠에서 쪼그리고 앉아, 종이팩 우유와 500원짜리 크림빵을 홀로 먹고있는 한 초라한 노인의 모습은, 생면부지의 남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짠하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이 시스템을 생태의 자연계로 삼아, 어떻게든 힘들게 생존하고 있는 개인의 '살아간다'라는 의미가 그제서야 비장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지갑을 더 쉽게 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점심을 굶고 있는 결식아동의 모습이지 통계적 데이타가 아닐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동물적 본성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바로 인간이기에 너무 '인간적'이다. '먹는다'는 것은 기호화되고 수치화되고 객체화 된 타인이라는 존재를, 같이 숨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게하는 단서다. 이런 감성으로 밤거리를 본다면, 난잡하고 무질서하고 욕망의 배설구 같은 풍경이 다르게 느껴진다. 

왠지 살갑고 한편 애잔한 풍경이 된다. 형광등 아래 그윽한 연기속에 잔을 부딪히고, 필요이상의 큰소리로 떠들며 와이셔츠에 기름을 묻히고 앉아있는 아저씨들의 모습 조차 애틋하다. 우리 모두 어떻게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 사회에서 인간 톱니바퀴 역활을 하며 몸을 맞대며 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드라마 '심야식당' 오프닝


 
여튼, 다이어트의 부작용 때문인지, 드라마 오프닝을 보며 울컥해 버렸다. 꽤나 재미있게 봤던 아베 야로 작가의 '심야식당'이 원작인 드라마인데, 원작에서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작품의 본질이 오프닝으로  너무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냥 신주쿠의 밤거리를 스테디캠으로 훓었을 뿐인데, 애틋하고 가슴이 짠해온다. 드라마는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라 아직 2화까지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진솔하고 흐믓하다. '먹고 살아간다'라는 인간 존재의 명제가 그래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물론, 원작도 완전 훌륭하다.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주인장이, 깊은 밤 문을 열어, 다양한 사회의 구성원들과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식당이 정말로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다. 모양새와 직업으로 생긴 선입견과 차별을 허물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곳. 하루 하루를 더 살아가는데 깊은 위로가 되 줄 수 있는, 육체적 허기와 인생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진짜 삶을 위한 양식이 될 것만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도 책도, 다이어트에는 치명적인 방해요소다.




p.s. 블로그질 완전히 끊으려고 했는데, 다이어트까지 하는 마당에 쉽지 않다;;;

p.s.2. 이곳 이글루스에 언젠가 그런 식당에 대한 소개글이 올라오길 상상해 본다.
        그냥 단순한 미식탐험은 이제 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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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 | 2009/10/21 13:34 | 낙원 드라마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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