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은 다수의 의견을 물어 사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6:4였던 여론은 투표를 통해 10:0이라는 결과로 정리되어 버린다. 다수결은 다수의 여론을 듣는 방법이 아니라, 승부를 가리기 위한 게임이다. 지면 땡이다. 결과에는 4의 의견따위는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이기면 전부이고 지면 0인 피말리는 진검승부다.
사견을 보태면, 다수결은 미봉책이다. 다수결을 달리 말하면 투표를 통해 소수의 의견을 소거해버리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수결은 다수가 횡포를 부릴수 있는 좋은 무기이기도 하다. 다수결에 대한 지나친 존중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주의, 혹은 전체주의 따위로 나아갈지도 모른다. 때로는 다수결을 통해 결정된 사안에도, 반발하고 반대하고 끝까지 소신을 지키고 결국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보장될 수 있는 체제가 진짜 민주주의라 생각한다.
어쨋든, 선거는 투표라는 방식의 다수결을 통해 치뤄진다. 그리고, 이 다수결의 '지면 땡' 이라는 속성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든다. 소신껏 투표하더라도 내가 표를 준 사람이 당선이 안되면 그 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에 대해서 누군가 친절하게 '사표'라고 정의하여 주셨다. 죽은 표. 아무 의미 없는 표. 똑똑하지 못한 선택의 증거.

투표를 목전에 둔 지금,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바로 이 '사표'이다. 여론 조사 결과도 이것 저것 나오고 있고, 이젠 의사결정을 해야할 시점이니까. 어떻게 하면 나의 소중한 한표를 '사표'로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타협을 하고 계산을 한다. 그냥 이사람이 좋다고 그사람한테 투표하는 건 바보다. 잘 고민해야지.
'사표'라는 단어는 무서운 프레이밍이다. 사표라는 단어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투표행위를, 마치 전략적이고 영리한 선택인 것 처럼 인지하게 한다. 사표라는 프레임은 소신의 표현인 '투표'라는 행위를 '투자'로 만들어 버린다. '투표'가 '투자'라는 사고의 틀 안에서 고민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시민으로써의 정체성을 잊고 소비자로 변모하고 만다. 그나마 될법한 구좌에 표를 투자한다. 바로 누군가가 바라는대로.
사표라는 단어는 자신의 '소중한 한표'가 왜 소중한 한표인지를 잊게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표가 소중한 것은 맞다. 그러나 소중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한표가 소중한 유일한 이유는, 이 표가 나의 소신과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표가 되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던져라.
그저 투표를 독려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사표를 피하는 투표는 여전히 누군가의 각본내에서 돌아가는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실제 국민들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왜곡된 숫자를 빼도박도 못하게 기록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봐? 얘네는 그렇게 설쳐도 이렇게 소수라니까? 다수는 실제보다 더 다수가 되고, 소수는 실제보다 더 소수가 된다.
사표는 없다. 내 표는 죽지 않는다. 내 표는 내 의지와 소신의 다짐이다.당신의 마음을 담아 진실하게 투표해야 한다. 투표함 앞에 선 우리는 비지니스맨이 아니라 유권자고 시민이다. 머리를 쓰고 전략적으로 소신을 바꾸는 것은 위정자의 역활이지 우리의 역활이 아니다. 내 의지와 소신은 내가 투표한 사람이 당선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의지와 소신은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사리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끝까지 지키고 표현해야할 소중한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라.
- Henry David Thoreau
※ 특정 정당을 지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어느 당을 지지하고,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시던, 본질이 아닌 것에 휘둘리지 말고 소신껏 한표를 행사하자는 의미에요. '이런 글 내용이라면, 이사람은 이 정당의 지지자이겠군?' 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완벽한 오해! 사실 전 어떤당도 다 불만이라, 개인을 보고 찍으려 열심히 공부중이거든요^^ 첨언하자면,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 성향을 지닌 중도 보수;;;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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